작년 10월 경 난 초등학교 평가담당 교사였습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전교조 선생님과 강행하려는 교장선생님과의 갈등 사이에서 해결방법을 합리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내 마음 한 편으로는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정부정책으로 실시하는 일제고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무모한 행동처럼 보여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개인적 친분이 있는 전교조 선생님께 제 사정을 생각하셔서 '적당히' 거부하시다가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학생들 개인 의사를 존중해 시험을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큰 사고(?)없이 일은 잘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계속 내 마음 속에서는 '일제고사를 반대한다'는 의사 표현은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밷은 적이 없고 오히려 정부의 빗나간 교육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일이 잘 끝나기만을 바랬던 제가 너무나 한심스러웠습니다. 제 양심을 속여가면서 아니...모른 척 해가면서 살아가는 개념(?)없는 무기력한 교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
오늘은 6학년 학년부장인 저와 일제고사를 대비해서 6학년 선생님들,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 이렇게 14분 정도가 함께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일제고사가 학교간 자존심 경쟁으로 치닫고 있으니 우리도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염려에서 교장선생님께서 소집한 회의였습니다.
의견들은 서서히 요점정리와 기출문제 위주로 정리한 책을 제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아침자습시간과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서 학급에서 다루는 방식으로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각 교실 담임은 학생들에게 미리 정해진 학급활동과 마음껏 뛰놀아야 하는 점심시간에 일제고사 대비 수업을 시키자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었습니다. 학년 여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장교사인 나로서 그럼 요점정리와 기출문제를 정리한 책을 제본해서 학급에서 활용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이 역시 작년에 느꼈던 제 양심에 반하는 말을 해 버린 것입니다. 제 스스로 너무나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소심한 나로서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두 가지 결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요약정리한 책으로 자습시간과 점심시간에 일제고사 대비 수업은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학급의 평균시험점수로 내 스스로를 평가하는 그런 교사는 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일 교장선생님들과 담임선생님들께 제 소견을 말씀드리고 이번 만큼은 부장교사가 아닌 한 학급의 교육을 담당하는 초등교사로서 그리고 내 양심에 비추어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럼, 나는 왜 일제고사를 대비한 수업을 안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 내가 나에게 물어봅니다.
첫째, 일제고사는 전혀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수량적인 평가 한 부분만으로 학생을 등급화해서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구분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이런 식의 교육은 무한경쟁 위주의 시장논리에나 적합합니다.
둘째, 학생들 개개인의 심신의 고른 발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제고사를 통해서 학생들이 맛보는 결과는 가혹하리만치 비인간적입니다. 10개 틀린 학생은 5개 틀린 학생을 통해서 좌절감을 느끼고 5개 틀린 학생은 1~2개 틀린 학생들을 통해서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낄 뿐입니다. 시험의 난도 조절로 인해서 거의 만점이 나오는 학생은 우리 학교에서 한 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시험을 치르고 느끼는 심리적 경험은 모든 학생들에게 절대 달콤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 좌절감을 맛본 학생들이 이보다 더 엄청난 시련이 닥쳐올때 당당하게 도전해서 견뎌 이겨내려는 생각이 자라날 수 있을까요 ? 생각해 볼 일입니다.
셋째, 일제고사를 대비한 수업은 암기식, 주입식 수업만을 강요합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필요하다면 암기식, 주입식 교육도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현재 7차교육과정에서 어느 한 차시만 봐도 암기식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장하는 문구는 절대 한 군데도 없습니다.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수업 환경을 조성해서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협동하고 서로 존중하는 수업을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넷재, '학력 신장'이라는 유령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일제고사 대비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스스로 교사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학력 신장'은 곧 학교서열화로 이어지고 교원평가, 학교선택제, 담임선택제 등을 통해서 공교육을 붕괴시키고 결국 경제적 지위차에 따른 부자와 빈자의 교육 불평등으로 치닫게 되는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무엇보다 일제고사 대비 수업은 내 양심에 반하는 수업입니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교육적 소신을 스스로 포기하고 정권의 도구적 존재로 전락하는 것은 스스로 꼬박꼬박 받는 월급과 조금 여유있는 방학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이유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되먹지도 않은 이유를 들이대면서 일제고사 대비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작년 시험거부로 일관하시던 한 전교조 선생님에게서 느꼈던 무모함, 무력감, 자괴감 같은 것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편합니다. 앞으로 '당신이 수업을 너무 못해서 학급의 시험 평균 점수가 너무 낮으니 교직을 포기하던지 장기 무급휴가를 내시오'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내가 꿈꾸는 수업을 그리면서 '실천하는 양심'을 가진 교사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